WHO |
검은 머리카락은 빛 아래에서 은은한 적갈색을 드러냈다. 머리카락은 목덜미가 보이게 쳐냈다. 턱선을 웃도는 옆머리와 눈썹 위로 대충 내린 앞머리는 바람결에 헝클어진다. 진한 눈썹은 굴곡지지 않게 떨어져 따로 두고 보면 선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사납다. 쌍꺼풀 없는 두 눈은 얇고 촘촘히 난 속눈썹이 강한 눈매를 만들었다. 어두운 눈동자는 척 보기에 검었고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따뜻한 빛을 띤다. 낮은 콧대와 오종종한 콧방울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얇은 입술은 메말라 곧잘 튼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다.
햇볕에 그을린 것치곤 하얀 피부다.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아 동그스름한 볼은 관리가 되지 않아 붉게 튼다. 어려 마냥 부드러워 보이는 겉과 달리 거친 피부 결. 작은 두상, 작은 체구. 160 남짓의 키에 몸의 선이 얇다. 자칫 소년으로 착각하면 호를 그리는 작은 어깨와 곡선형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앳된 얼굴이 소녀보단 아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체구가 작은 아이는 또래보다 좀 어려 보였다. 소녀는 제 시작을 몰랐다. 산과 들, 강과 바다도 모두 그 처음이 있는 법인데 아이는 저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몰랐다.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저를 키워온 할머니뿐이었다. 어린 날 제 부모에 대해 물어볼라치면 무릎 위에 저를 앉히곤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늙고 커다란 매가 물고 왔다. 눈보라 속에서 홀로 꽃밭 위에 있었다. 날이 지나고 해가 지나면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에 어렴풋이 현실을 직감했다. 그런데도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친자식이 있던 시절이 있었고 그녀 젊은 날 하늘로 보냈다는 것을 조금 철이 들어 주변으로부터 들었다. 눈, 코, 입이 다르게 생겼다 하여 가족이 아닌 것이 아니었다. 그걸로도 족했다. 아이는 아이의 시작을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이의 시작을 말했다. 할머니가 주워온 아이. 아이는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른스럽다. 온화하고 현명한 노인이라 해도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삶이었다. 아이는 빠르게 자라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몸에 배려했고 당연하게도 사냥 또한 익혔다. 몸을 사리는 성격이 못됐다. 할머니가 노쇠하면서 아이는 보호하려는 사람으로 컸다. 남의 도움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는 낯을 가렸지만, 사람을 싫어하진 않는다. 먼저 말을 건네며 웃진 않았지만 웃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홀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것에 익숙하다. 아이는 총명하고 고지식하다. 가르치는 이의 영향이 컸다. 아이는 작은 체구를 무마하려는 듯 언제나 턱 끝을 살짝 치켜들고 있다. 걸음은 빠르고 보폭이 좁다. 아이는 시작을 모르는 만큼 끝에 매달린다. 아이는 저보다 먼저 끝을 맞이할 이를 걱정한다. 자신의 끝을 바라봐줄 유일한 이를 기대한다. |
AM |
"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야 매가 오지 않을 거야 " 가시 돋친 말에 소녀의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갔다. 앙다문 입술이 바로 열렸다가 닫치고 몇 번 우물거리다가 이내 덤덤하게 내뱉는다. "괜찮아." 괜찮아. 나의 매라면 찾아올 수 있을 거야. 소녀는 그리고는 말없이 허공에 손을 뻗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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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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