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ps
셜록 드림.
오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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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중이었어요?"
발소리를 들었는지 말을 걸기도 전에 고개를 들고 있던 그의 얼굴 위로 고글이 보였다. 이것저것 널브러진 식탁 위에서 그나마 정체를 알 수 있는 건 현미경과 페트리 접시들뿐이었다. 그는 눈이 마주치고 나라는 걸 확인하곤 조리개에 얹고 있던 손을 들어 테이블에 내렸다. 손목 아래로 가운이 한들거렸고 셔츠의 소매가 엿보였다. 오늘은 보라색이었다. "그래."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구경해도 돼요?" 테이블을 돌아 맞은 편에 있던 의자를 그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보통 내가 오면 일을 멈추었기 때문에 실험 도중의 그를 보는 건 제법 신선했다. 전부터 무슨 실험을 하는지 궁금했던 참에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서 살펴보니 그 어지러운 와중에 눈에 띄는 비커가 있었다. "잠깐 저거, 사람 눈이에요?" 시선을 낮춰 비커 안을 들여다보니 투명한 용액 속의 안구와 눈이 마주쳤다. "오, 사람 눈은 처음 봐요." 전에 생물학 실험으로 소의 눈과 고양이까지는 해부해 본 적이 있었다. 냄새를 뺀다면 무척 흥미로웠다. 아마도 내 비위는 그런 쪽으로 강한 듯했다. 게다가 진짜 사람 눈은 글쎄, 본 적이 있다면 그 편이 특이 케이스였다.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들여다보던 비커를 집어 자기 앞으로 가져다 놓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시신경 세포와 관련된 실험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충 알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고등학교 때 AP 생물학을 들은 이후로 그쪽 방면은 보지도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시선을 마주치고 경청하고 있으니 듣기 좋은 목소리가 잇달아 울렸다. 실험 도구들을 내려다보느라 내리뜬 눈으로 속눈썹이 드리웠다. 도톰한 입술은 바쁘게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셜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입술이 어리다고. 두 번씩이나 들었으니 잘 기억났다. 입술을 문지르던 손가락의 감촉과 머릿속에 맴돌던 억양은 설렘과 함께 의문을 동반했다. 사람 마음 혼란스러우라고 일부러 그랬는지 싶게 만감이 교차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 덕분에 한동안 엄청 나게 신경이 쓰였었다. 대충 예상할 수 있는 의미가 두어 개였고, 그 둘의 의미가 상당히 상반되었기 때문에 더욱, 알기 어려웠다. 그런 의문들을 전부 뒤로 미뤄버리게 된 건 예상치 못한 입맞춤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얼굴 보는 것 만으로도 기뻐서 그다지...
"시엘."
그의 부름에 눈을 달리 떴다. "전혀 안 듣고 있었군." 무어라 답할지 생각하며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그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이런.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건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인데. 손을 뻗어 미간을 문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아니에요. 다 듣고 있었다고요." 억울한 척 고개를 가로젓다가 눈을 맞췄다. 파란 눈동자가 바로 보였다. 알기 쉽다가도 잘 모르겠는 그였다. "듣다가, 그러다가 뭐가 생각났어요. "몸을 일으켰다. 한 손을 짚고 탁상을 가로질렀다. 부러 눈을 피해서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높은 콧날 아래로 다물린 입술이 시야에 들어왔다. 쪽. 낯부끄러운 소리가 났다. 도저히 깊게 할 용기는 없었다. 티 나지 않게 침을 삼키며 하려던 말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제 안 어려 보이나 봐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아, 이건 사람 혀네." 괜히 구석에 있던 걸 건드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해본다. 대답을 듣기 위한 일이라고 속으로 정당화했다. 부디 마구 돌고 있는 혈액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길 바라며,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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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에 어쩌다가 생각났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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