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한 때였다. 생일을 앞둔 소녀들은 모이고 모여 노래를 불렀다. 말하자면 연습이었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제 짝을 찾는 구애의 목소리다. 재잘거리는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이따금 섞였다.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엉켜 그 안에 담아두지 못하고 만개한 꽃같이 흩날렸다. 그 주변만이 향기로웠다. 소녀들은 들뜬 마음을 그렇게 가다듬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르 안은 조용했다. 오르락내리락,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누운 이의 가슴팍을 잠시 바라보다가 오르한은 시선을 들었다. 귀를 기울이면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가도 순간순간 밖에서 들려오는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에 적막이 깨졌다. 아이는 미간을 좁혔다. 괜한 심통이었다. 할머니가 일어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지. 아이는 생각하고 게르를 나섰다. 가뜩이나 올라간 눈꼬리가 평소보다 매서웠다.


-


아이의 입에서도 듣기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간이 있었다. 오래되었다면 오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그렇기도 한 때. 아이와 함께인 노인이 정정하던 날들이었다고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노인은 누워있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이는 수줍었지만, 노인을 졸졸 쫓아 다니며 거들었었다. 그러다 이따금, 노인이 흥을 내면 아이는 미소 지었고 곧잘 따라 불렀다. 그 목소리는 제법 어여쁘더라.


노인은 나이가 많았다. 정정했고 정정해 보였지만 그조차 도 세월을 비켜갈 순 없었다. 노인이 밖으로 나서는 일이 줄고 그, 곧은 등이 굽어 누워있는 일이 늘었을 때, 오르한은 더는 노래하지 않았다.


하루는 노인이 물었다. 오르한, 어째서 노래하지 않니 할미를 위해 노래해 주지 않겠니


"할머니가 다 나으면 그때 같이 해."


아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내뱉었다. 그건 어린아이의 고집이었다. 일종의 으름장이고 투정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기도였다. 내가 이만큼 노력하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 바랄 테니 부디.


-


저벅저벅. 땅 밟는 소리에 집중해본다. 까르륵. 먼 뒤의 웃음소리가 끼어들었다. 웃음소리가 익숙했다. 제기랄! 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아이는 눈을 감았다. 번듯한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드리운 것은 작년 이맘때의 그림자였다. 말 없는 아이에게 다가온 소녀가 있었다. 노랫소리가 예쁜 밝은 소녀였다.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야 매가 오지 않을 거야.

이 드넓은 땅에서 어찌 네가 있는 곳을 알고 오겠니?


아마, 소녀는 저를 싫어했던 것 같다. 아이는 나중에야 생각했다. 그 순간엔 부정하느라 바빴으니까. 아이는 치미는 생각들을 뒤로하고 괜찮다고 그저 괜찮다고 속으로 돼내었다. 그러나 제 매는 오지 않았다. 그건 그의 탓일까.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역시 제 탓일까. 바보 같은 제 고집에 그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올해도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눈앞이 붉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눈을 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삐딱한 시선 끝에 모난 돌멩이가 걸렸다. 생각 없이 발끝이 움직였다.


"노래 따위 하지 않아도 나의 매는 찾아올 거야."


 맹목적이라 욕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르한은 믿어야만 했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들어줄 터였다. 오르한, 아이는 바람이었다. 자신을 거둔 이가 지어준 이름처럼 소리 없이 그저 시원한 바람이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바람결과 흔들리는 풀 소리에 담긴 목소리를 그라면 알아차릴 거다. 아이의 소리 없는 노래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차. 고개를 드니 방금 걷어찬 돌멩이가 다른 이의 앞에 가 있었다. 설마 맞지는 않았겠지? 알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문득 제 혼잣말을 들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고르지 못한 체로 아이는 그저 서 있었다. 소녀들의 노랫소리는 제법 먼 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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