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 한
W. 아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자신을 후원하는 이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리 없었다. 여느 아가씨들이 꿈에 그리는 왕자님을 상상할 때 이블린은 종종 제 후원자를 그려 보았다. 나이는 어느 정도일지. 어떻게 생겼을지. 간간히 오는 선물이나 쪽지로 보면 사려깊은 신사일 거라며 남몰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이블린의 일상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무도회에 가게 되었을 때엔 행여나 마주칠까 설랬더랬다. 하지만 이블린이 그가 누군가 짐작해 보았냐면 딱히 누구일꺼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그가 자신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곤 차마 짐작하지 못 했다.



첫 마디는 뭐가 좋을까. 공손해야 좋겠지. 너무 오버하지도 말고.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와 서서도 이블린은 이 상황을 믿기가 힘들었다. 만나자는 쪽지를 받고도 이게 그 에반젤 씨에게서 온 것인지 한동안 말도 안되는 의심을 했었다. 초조하게 손가락 끝이 맞부딪혔다. 설래임과 함께 괜한 걱정이 들었다. 제자리에 선 구두 뒷 굽이 다각거리며 소리를 냈다. 그 와중에도 소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저런 망상이 날개를 달았다.



" ㅡ 이블린양."

익숙한 목소리 였다. 돌아 본 시선 끝의 인물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블린은 습관적으로 방긋 웃었다. 아, 사무엘씨. 안녕하세요.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인사가 늦었군요.” 

 안녕하셨습니까, 이블린양. 

 “-에반젤 블랙입니다.”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이블린의 눈이 크게 띄였다. 그건 익숙한 이름이었다. 익숙한 이름이면서도 다른 이의 입으로 들은 적이 없는 낮선 이름이었다. 야무진 소녀가 답지 않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봉투를 건내 받으면서도 살짝 멍한 머리에 상황파악이 잘 안 되었다. 이블린은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저가 골라 준 색으로 치장된 모래가 담긴 병과 장갑이었다.

"사무엘씨가, 저의 에반젤씨 라구요?"

이블린의 눈이 가늘어 졌다가 그저 놀라움을 담으며 커졌다. 오 세상에. 그와의 만남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다친 샬롯을 위해 술집에 들어갔다가 마주쳤던 것도 가게에서 물감을 고르는 것을 도운 것도 그리고 무도회에서 까지. 그러고 보니까 나는 내게 줄 물감을 골라드린 거잖아. 게다가 무도회에선 그가 선물해준 귀걸이를 그가 직접 되찾아 준 격이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런 만남은 상상도 못 했었다. 정말이지, 이건 무슨 이야기에나 나오는 전개가 아닌가!

이블린은 선물이 담긴 봉투를 소중하게 품에 껴 안았다. 소녀가 놀랜 숨을 가다듬었다.

"아, 죄송해요. 설마, 설마 사무엘 씨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해서. 아, 물론 실망한게 아니라요. 우연치곤 너무 많이 마주쳤잖아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어쩌면 진짜 인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블린은 거기까지 말하곤 금세 웃으면서 개구지게 눈을 굴렸다.



그런데 에반젤씨
전혀 못 알아보는 저 보면서 웃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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