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mean****)
1 1:1대화



Concern
W. 아가


남자는 별 다른 말 없이 제 손가락을 쥐었다. 힘이 들어갔음에도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 묘한 압박감에도 손가락에서 배어나오는 피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피의 붉은 색은 소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서 배어나와 결국엔 남자의 하얀 피부마저 붉게 물들였다. 그의 엄지에 뭍은 선연한 색이 이질적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질 때 마다 온기와 함께 막혀있던 것이 조금씩 흘러 넘치는 감각은 과히 좋지 못 했지만 이블린은 숨을 죽이고 말 없이 그 하는 양을 지켜 보았다. 얼마나 집중한 것인지 도서관의 소음들은 모두 사라졌다. 곤두선 신경은 손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 와중엔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못 한 채 였다. 책이 안 읽히는 만큼 사고도 되지 않는 오후였다.



*


강건히 이끄는 손길은 밖으로 향했다. 선선한 바람이 훅 끼쳐와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흐트렸다. 이블린은 따라 나서면서도 뭐라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그냥 그대로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려다 보는 시선 끝에 닿은 그의 손은 이미 저 못지 않게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걸 보며 이제 와서 괜찮다는 둥 말 할 만큼 둔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종이에 배인 상처였다. 남자의 진중한 반응에 이블린은 할 말을 잃었다. 올려다본 하늘이 유독 파랗게 개어 있었다.

교정의 단풍나무들은 보기 좋은 색깔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밴치 위는 깨끗했다. 남자는 정성스레 상처를 감싸고 나서야 손은 떨어졌다. 상처를 내려다 보던 시선을 들어 그를 올려다 보았다. 마주 본 시선이 누가 먼저 였는지 몰랐다. 그건 그저 허공에 맞물렸다. 

"조심하십시오 미스."

남자의 저음의 목소리에 이블린은 눈썹을 치떴다. 그다지 감정이 실려 보이지 않는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흘러 나왔다. 이블린은 또 한 번 이제는 피가 멈추었을 손가락을 내려다 보았다. 남자의 목소리는 지리할 만큼 형식적이었지만 이블린은 그 속에 담겼을 남자의 속 뜻을 이해하지 못 할 만큼 둔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안그래요."

그럼에도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은 일종의 변명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멍한 스스로에 대한 투정섞인 변명과도 같은 말이었다. 이블린은 그리 말하며 습관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보기 좋은 보조개가 양 볼에 들어났다. 마주 본 눈동자가 제 의중을 살핀다. 어쩌면 그는 제 말의 의도를 다르게 받아 들인 것일지도 몰랐다. 길어지는 침묵에 뭐라 더 말을 해야할까 고심할 때 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그 였다.

"... 걱정이 됩니다."

나직한 말소리는 그 뜻을 절절히 담았다. 고작해야 종이에 배인 상처였다. 남자는 지나치게 진중했다. 이블린은 시선을 떨구며 말을 골랐다. 웃어 넘길까 생각했지만 그의 걱정을 우스개로 넘기기는 싫었다. 내리깐 시선에 남자의 손이 들어왔다. 자신의 손과 달리 큰 손엔 아직도 아까의 혈흔이 남아 있었다. 그는 아마 도서관에 볼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이 끝났던 아니던 자신은 그의 하루에 예정되지 않은 손님이었다. 마치 그 사실이 저 흐릿한 붉은색에서 배어나는 것 같았다. 이블린은 손을 뻗었고 그리 멀지 않은 손 위에 얹어졌다. 그의 손을 다 덮을만큼 크진 않았지만 피의 흔적은 가리고도 남았다. 이블린은 짐짓 진지한 얼굴을 해 보였고 다시금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염려하지 마세요. 다시는 흠집 하나 나지 않도록 조심할 터이니."

조근조근 말하는 목소리였다. 남자의 걱정을 얼르듯 소녀는 말했다. 사실, 종이에 배이는 일이 조심한다고 평생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 만큼 조심할 일도 아니였다. 그럼에도 이블린은 그의 호의가 싫지 않았기에 그의 걱정을 덜어주려했다. 적어도, 그녀의 의도는 그러했다. 이블린은 할 말을 끝내고 손을 거두며 그의 쪽으로 기울였던 몸을 바로 했다. 

"그나저나, 겨우 배인 상처로 너무 걱정해주시는 거 아닌가요?"

이블린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웃음끼 섞인 말은 언제 진지 했냐는 듯이 밝았고 소녀의 녹음이 지는 눈동자엔 장난끼가 스몄다. 신사 분의 손 마저 더럽혀 버렸잖아요. 이블린은 조금 과장스레 말하다가 문득 손의 상처가 당겨 멈추어야 했다. 방금 까지는 눈 앞의 남자가 치료를 위해 잡고 있었기에 알지 못 했던 것이었다. 이블린은 재잘거리던 입을 다물었다. 고마워요. 그는 어쩌면 이 소녀가 기복이 심하다 생각할 지도 몰랐다. 충동적인 말은 한 쪽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는 입술 끝에서 흘러나왔다. 그건,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진심이었다. 

유난히도 흘러가는 구름이 느린 오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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