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금같은 상처였다. 작은 기포처럼 솟아나온 핏물이 점점 그 몽우리를 불려갔다. 프레드릭 밴더빌트가 그것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소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붉은 꽃이 망울지며 피기 시작했다. 작은 머리통이 고개를 떨구고 핏물이 배이는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손이 하얗고 작은 손 위에 겹쳐진 것은 왜였을까. 작고 가녀린 어꺠가 이미 날을 떠나버린 어린 누이를 닮아서? 아니면…?


"…쉿."


고개를 들고 자신을 향하는 연녹빛 눈자를 알았다. 그기 조용히 놀란 숨을 억누를 것을 간청했다. 핏물이 배여 오던 손가락을 쥐는 손은 제법 압박감이 있었으나 아프지는 않았다. 그가 꾹 누르던 손에 힘을 뺐다. 멎을 것만 같던 핏물은 주춤하다가도 다시 위로 솟아오르길 반복했다. 그 비슷한 행위가 두 어번 이어졌다. 여전히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으나. 남자는 그것을 깨닫기에 너무 미련하고 바보같은 행동을 이어갈 뿐이었다. 피를 멎게 한다는 것이 결국 제 깨끗한 엄지손가락에도 핏불이 번지도록 만든 셈이었다. 그가 물끄러미 묻어난 핏물을 바라보았다. 담담한 시선이 돌아갔다. 프레드릭 밴더빌트는 허리를 굽혀 부드럽게 흩어지는 머릿결을 해치고 무언가를 속삭이다 아프지 않도록, 그러나 강건히 잡은 손을 이끌었다.

 

 

*


바람이 불었다. 날이 선선히 가라앉았다. 조금만 지나면 앉은 벤치에는 낙엽이 쌓일 것이다. 그가 쥐었던 손을 놓았다. 상처 위에 덧붙혀진 것은 작은 호의였다. 두 눈동자가 어설프게 마주쳤다. 엇비슷한 색깔이라 볼 수도 있겠다만 그것은 엄연히 색을 달리하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미스." 


그러려던 의도는 아니었다. 단지 걱정을 드러내고 싶었던 말이 너무나도 딱딱한 예의와 겉치레에 틀어막혀 생면부지의 소녀를 혼내기 시작하는 엄하고 재미 없는 목소리로 변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이제야 제가 취한 행동이 모두 무례한 것이었음을 알았던게다.

 

"평소에는 잘 안그래요."

 

민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제 무례한 참견에 화가 났을 지도 모르리라. 어쩌면 쏴붙이는 말투였을지도 모른다. 프레드릭 밴더빌트는 소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의 감정에 둔한 사내는 아니었으나, 으레 이만한 또래 여자아이의 마음이란 그 누구도 읽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이 작은 해프닝으로 소녀가 덜렁거리거나 섬세하지 못한 숙녀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긴 침묵이 있었다. …그래도. 침묵을 깨고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걱정이 됩니다."

 

그는 다만 소녀가 제 말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나쁘게 듣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 퍼온다. 말도 없이, 앤캐 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