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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밀밭은 밀이 바로 금싸라기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진한 금색으로 여물었다. 소녀의 옅은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잘게 흩날릴 때 마다 여물어 굽은 머리를 넘실거리며 춤을 추었는데
그 모양새가 퍽 웃겨서 소녀는 다문 입술 끄트머리로 웃음을 흘렸다. 그러
다가도 자신의 키 보다 높다란 밀 줄기들이 거슬려 작은 손을 뻗어 밀어내며
척척 곧게도 밀밭을 가로질렀다.

밀밭에 선 소녀는 딱히 옆 집 에밀리아처럼 커서 왕자님과 결혼 하겠다거나
하는 꿈은 없었고 -안타깝게도 이블린은 미국에 더 이상의 왕자가 없다는 
것을 그 딱한 꿈을 품은 아이에게 알려주진 않았다.- 혹은 야밤에 도시행 
기차를 타고 떠났다는 길 맞은 편 집의 피터의 형 파커같은 야망도 없었다.


그런 이블린이었지만 흐드러지는 금빛 물결에 내리쬐는 태양 빛에, 간밤의 
책에서 본 이야기가 어렴풋이 상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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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na be where the people are 
I wanna seeWanna see 'em dancin' 
Walkin' around on those(Whad'ya call 'em?) 
oh -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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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홀에는 금빛 밀이 아닌 샹드리에의 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대리석
바닥이 깔려 있고 소녀의 키의 배의 배는 되는 높이의 천장에는 떨어지면 큰 
일이 날 것만 같은 샹드리에가 그 웅장함을 뽐내며 빛을 발한다. 그 밑으로
춤을 추는 것은 사람들로 화려하고 우아한 차림새의 신사 숙녀들은 가볍게
발을 놀리기도 하고 음식을 즐기기도 수다를 떨기도 한다. 

장소도 사람들도 분위기도 어느 것 하나 익숙치 않은 이질적인 광경은 소박한 
밀밭을 말끄러미 바라보는 소녀의 녹색 눈동자에 잠시 드리웠다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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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where they walk
Up where they run
Up where they stay all day in the sun
Wanderin' free
Wish I could bePart of tha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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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이블린은 자신이 언젠가 이 작디 작은 마을을 나설 것도 대학을 가게
될 거라는 것도 제게 후원자가 생길 것이라는 것도 또 다음날의 무도회를 위해
간밤에 옷과 신발들로 방 안을 어지럽히며 룸메이트를 잠 못 들게 할 것이라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알지 못 했다.